선조는 조선 제14대 왕으로, 명종의 사망 이후 즉위했습니다. 정국을 활기롭게 하기 위해 이황과 이이를 중용하며 노력했으나, 사림들 사이의 파벌과 당쟁으로 인해 국력이 약화되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과 이에 이어 정유재란으로 인해 국가는 황폐하게 되었고, 왜란 이후에도 복구 작업을 진행하면서 국가 회복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지만 당쟁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목차여기]
조선 제 14대 왕 선조 이연의 배경
- 1552년 12월 6일 ~ 1608년 3월 6일
- 조선 제14대(재위: 1567년 ~ 1608년) 왕
- 능호는 목릉으로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위치
- 임진왜란, 정유재란, 행주대첩
이균(본관: 전주) 후에 연으로 바꿈. 중종의 손자로, 덕흥대원군의 세 번째 아들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정세호의 딸인 하동부대부인 정 씨였고, 비로는 박응순의 딸인 의인왕후, 계비로는 김제남의 딸인 인목왕후를 맞이했습니다. 1552년에 서울 인달방에서 태어났으며, 명종이 후사 없이 죽자 16세로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명종의 비 인순왕후 심씨와 함께 수렴청정을 하였다가, 이듬해에는 친정을 주재하였습니다. 왕위에 올라서도 이연은 학문에 열정적이었으며, 그의 왕위에 오름에 따라 아버지가 대원군으로 봉해지면서 조선에 대원군제도가 처음 시행되었습니다.
선조 이연의 업적과 활동 사항
인재 등용으로 인한 국정 쇄신
선조는 조선 중기에 훈구파와 사림파 갈등에서 억울한 사림들을 신원하고 훈구세력에 벌을 내리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로써 사림들의 중앙정계 진출이 촉진되어 새로운 인물들이 등용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과거 시험의 성적뿐만 아니라 학문적 업적을 중시하여 이황과 이이와 같은 많은 인재들을 등용하고 국정을 쇄신했습니다.
그러나 사림의 중앙 정계 진출과 함께 나타난 새로운 현상으로 당파가 만들어지게 되었고, 김효원과 심의겸의 갈등으로 인해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국가 정책 결정에 혼선을 가져왔습니다. 1591년 세자 책봉 문제로 인해 정권 우위를 장악한 동인과 서인의 대립은 강건파와 온건파 사이의 분쟁으로 이어지며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지면서 정쟁은 더욱 격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1583년과 1587년에는 이탕개를 중심으로 한 야인들이 침략하여 경원부를 함락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신립과 신상절의 반격으로 두만강 유역을 회복하였습니다. 또한 조선의 종계변무 문제를 해결하여 이성계가 이인임의 후예로 잘못 기록된 문제를 바로잡아 계통을 올바르게 정비했습니다.
임진왜란의 발발
일본의 움직임이 수상하여 1590년에 일본에 파견된 통신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의 서로 다른 보고서로 인해 정책 수립이 어려웠으나, 1592년에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선조는 의주까지 피난하였다. 이후 명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여 원군이 왜군을 격퇴하는 데에 일조했습니다. 이후에도 각지에서 의병들의 활약으로 왜군에 퇴각을 이끌었습니다. 전쟁 중에도 파당 갈등이 있었지만 군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납속책(백성들에게 곡식을 받고 벼슬을 하사)을 강화하고 군사력을 증강하여 전세를 뒤집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왜군은 다시 침입하였습니다.
임진왜란이 종료된 이후에는 민심 안정과 적의 재침을 막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말년에는 적장자인 영창대군을 뒤를 잇게 하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진 못하였다.
선조 이연에 대한 평가
선조는 후궁 출신으로 왕위에 오르게 된 조선의 왕이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훈구세력이 몰락하고 사림세력이 등장하면서 당쟁이 심했고, 조선이 건국되고 200년 동안 지속되던 평화로 인해 국방력이 약화되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이 있다고 하여도 일본의 침략에 대응하지 못하고, 전쟁 이후에도 난국을 충분히 수습하지 못한 왕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다만 시대적 상황을 보자면 선조는 역사적 상황과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던 군주로서 알려져 있습니다.
※ 조선왕조 더 보기
'[흥부네] 지식 창고 > 역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임진왜란: 우리 민족 저항의 역사 (1) | 2023.10.19 |
---|---|
훈구파의 대한 도전, 신진 사류들의 숙청: 기묘사화 (2) | 2023.10.15 |
위화도 회군: 4 불가론, 조선건국의 기초 (4) | 2023.1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