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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이야기 25편|평민은 왜 다시 분노했을까? 리키니우스·섹스티우스 법 갈리아 침공 이후 다시 시작된 로마의 귀족과 평민 갈등. 부채와 공공토지 문제부터 리키니우스·섹스티우스 법, 기원전 366년 최초의 평민 집정관 탄생까지 로마 공화정의 변화를 살펴봅니다. 리키니우스·섹스티우스 법이란? 로마 평민 집정관과 신분투쟁의 역사갈리아인들이 떠나고 로마는 다시 세워졌습니다.하지만 성벽을 높이 쌓는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이번에는 로마 밖의 적이 아니라, 로마 안에서 오래 쌓여온 갈등이 다시 폭발합니다.귀족과 평민의 싸움이었습니다.1. 함께 싸웠지만, 권력은 함께 나누지 않았다초기 로마 공화정에서 시민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군인으로 싸워야 했습니다.특히 평민들은 로마군의 중요한 전력이었습니다.전쟁이 시작되면 농사를 짓던 평민들도 무기를 들고 전장으로 나갔습니다.문제.. 2026. 9. 3.
로마 이야기 24편|폐허에서 다시 일어난 로마, 카밀루스와 세르비우스 성벽 갈리아인의 침공으로 폐허가 된 로마는 어떻게 다시 일어섰을까요? 제2의 로물루스라 불린 카밀루스와 세르비우스 성벽 건설, 그리고 패배를 딛고 강국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로마의 역사를 알아봅니다. 갈리아 로마 약탈 이후의 부활|카밀루스와 세르비우스 성벽의 역사기원전 4세기 초, 로마는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순간을 맞았습니다.갈리아인들은 로마군을 무너뜨리고 도시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집과 신전은 약탈당했고, 로마인들이 자랑하던 도시는 처참하게 파괴되었습니다.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었습니다.로마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오히려 이 패배를 계기로 도시를 다시 세우고 방어 체계를 강화하면서 이전보다 훨씬 강한 국가로 변하기 시작합니다.그리고 그 중심에는 훗날 ‘제2의 로물루스’​라 불리게 되는 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2026. 9. 2.
로마 이야기 23편|로마가 불탔다 — 갈리아인에게 무너진 로마와 거위가 도시를 구한 밤 기원전 390년경 로마군은 알리아강에서 갈리아인에게 참패했고 로마는 점령과 약탈을 당했습니다. 브렌누스의 ‘Vae Victis’, 카피톨리누스 언덕과 유노의 거위 전설, 갈리아 침입 이후 로마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펴봅니다. 갈리아인의 로마 약탈|알리아강 전투·브렌누스·카피톨리누스 거위 전설기원전 396년, 로마는 오랜 숙적 베이(Veii)​를 정복하며 크게 성장했습니다.그러나 승리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불과 몇 년 뒤 북쪽에서 내려온 갈리아인(Gauls)​이 로마군을 격파하고 도시까지 진입합니다.로마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패배 중 하나,갈리아인의 로마 약탈 이야기입니다.1. 갈리아인들은 누구였을까?당시 로마인들이 갈리(Galli)​라고 부른 사람들은 넓은 의미에서 켈트계 집단들과 연결됩니다.이들.. 2026. 9. 1.
로마 이야기 22편|로마와 불과 16km 떨어진 적 — 베이와의 100년 전쟁 로마에서 불과 약 16km 떨어진 에트루리아 도시 베이는 초기 로마의 가장 위험한 경쟁자였습니다. 크레메라강에서 전멸한 파비우스 가문, 피데나이 쟁탈전, 카밀루스와 기원전 396년 베이 함락까지 로마가 생존전쟁에서 영토 팽창으로 나아간 과정을 살펴봅니다. 로마와 베이 전쟁|파비우스 가문의 전멸부터 카밀루스의 베이 정복까지기원전 5세기의 로마.동쪽에서는 아이퀴족(Aequi)​이 압박해왔고,남쪽과 남동쪽에서는 볼스키족(Volsci)​과 충돌했습니다.하지만 로마인들에게 훨씬 더 가까운 곳에 강력한 경쟁자가 있었습니다.로마에서 테베레강을 건너 북쪽으로 올라가면 만나는 도시.1. 베이는 어떤 도시였을까?먼저 베이를 단순히"로마가 정복한 작은 에트루리아 도시"정도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베이는 에트루리아 문명권의 중.. 2026. 8. 31.
로마 이야기 21편|밭을 갈던 농부가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 킨키나투스와 16일의 독재 밭을 갈던 농부가 하루아침에 로마 최고 권력자가 되었습니다. 기원전 458년 아이퀴족에게 포위된 로마군을 구하기 위해 독재관이 된 킨키나투스. 알기두스 산 전투와 16일 만의 사임, 그리고 그가 공화주의 지도자의 상징이 된 이유를 살펴봅니다. 킨키나투스와 로마 독재관|16일 만에 절대권력을 내려놓은 농부 장군 이야기1. 로마에는 왜 '독재관'이 필요했을까?로마 공화정의 기본 원칙 가운데 하나는 권력의 분산이었습니다.왕정이 무너진 뒤 로마인들은 한 사람이 장기간 최고 권력을 가지는 것을 경계했습니다.그래서 최고 정무관인 집정관도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었습니다.임기도 일반적으로 1년이었습니다.한 명이 지나치게 강해지는 것을 다른 한 명이 견제할 수 있었습니다.이것은 평상시에는 좋은 제도였습니다.하지만 국가.. 2026. 8. 28.
로마 이야기 20편|작은 로마는 왜 매년 전쟁을 벌였을까? — 제국 이전의 생존전쟁 기원전 5세기의 로마는 아직 제국이 아니었습니다. 라틴 도시와 에트루리아의 베이, 아이퀴족과 볼스키족에 둘러싸인 작은 도시국가였습니다. 레길루스 호수 전투와 카시우스 조약, 시민군과 평민 문제까지 초기 로마가 어떻게 생존하며 군사국가로 성장했는지 살펴봅니다. 공화정 초기 로마의 전쟁|라틴 동맹·볼스키·아이퀴·베이와 로마의 생존전쟁당시 로마 주변에는 수많은 경쟁자가 있었습니다.북쪽에는 강력한 에트루리아 도시들이 있었고,동쪽 산악지대에는 사비니족과 아이퀴족이 있었으며,남동쪽과 남쪽에서는 볼스키족이 압박해왔습니다.심지어 같은 라틴계 도시들도 항상 로마의 친구였던 것은 아닙니다.로마는 아직 제국이 아니었습니다.라티움의 여러 도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그런 작은 도시가 어떻게 수많은 경쟁자 사이에서 살아남았을까요?.. 2026.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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