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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네] 지식 창고/역사 이야기

조선 22대 왕 정조: 조선후기 개혁과 대통합의 업적

by 흥부네 수호천사 2023. 11. 23.

뛰어난 학문적 능력으로 왕이면서 스승이라 말하며, 당쟁을 뛰어넘어 개혁과 대통합을 이룬 조선 22대 왕이다. 규장각을 정권의 중요기관으로 삼아 문화와 정치를 이뤄나갔으며, 서적 편찬과 친위군 설치 그리고 화성 건설 등의 업적을 남겼다. 강한 왕권으로 왕도정치를 추진해 갔으며, 조선역사 후기 문화를 부흥시켰다.

 

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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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22대 왕 정조 이산의 배경과 활동사항(업적)

영조의 탕평책을 계승하여 왕도정치를 이어 나갔으며, 갖가지 개혁정치를 이어나갔으나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각종 정책은 대부분이 폐기되었다.

 

정조 이산의 배경

1752년 10월 28일 ~ 1800년 8월 18일

조선의 제22대(재위: 1776년~1800년) 왕

능호는 건릉이며, 경기도 화성시 효행로에 위치

탕평책 계승, 규장각, 수원 화성 축조, 장용영 설치

 

이름은 이산, 영조의 둘째 아들인 장헌세자(사도세자)와 혜경궁홍씨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고, 비는 효의왕후이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을 때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간청하였으며, 세손(영조의 손자)으로 세자의 역할을 하면서 1775년 대리청정을 하다가 이듬해 영조가 승하하자 25세에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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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이산의 업적과 활동사항

대리청정(1775년)

정조는 1775년 영조를 대신해 대리청정을 하였는데 왕위 계승에 반대하는 세력들에 의해 많은 장애물이 있었고, 심지어 정조를 해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대리청정이 결정될 당시에는 홍인한(정조의 외종조부)이 정조와 사이가 좋지 않아, 즉위를 반대하는 사건도 있었다. 홍인한은 자신의 위치를 이용하여 위세를 부렸기에 정조에게 미움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혁과 대통합(1776년)

영조는 25세에 나이에 즉위하면서, 아버지가 당쟁에 휘말려 희생되었기에 정적들을 제거하는데 주력하였다. 또한 규장각설치와 인재육성, 학문정치를 발판으로 하는 정책에 주력하였다. 정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홍국영에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이후 세도정치로 권력에 취한 홍국영도 축출하였다.

 

※ 세도정치: 세상 가운데의 도리란 뜻이지만, 조선시대에서는 특정인과 집단이 권력을 휘두르는 정치형태이다.

※ 규장각: 왕실의 학문 연구기관이며, 현재의 국립중앙도서관 같은 곳이다.

장용위·장용영 설치(1785년, 1793년)

탕평책을 펼치는 과정에서 국왕 호위 전담 부대도 설치하였는데, 1785년 장용위를 설치하고 나아가 1793년에는 규모를 확대시켜 장용영으로 변경하였다.

화성 건설(1796년)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무덤 이전을 계기로 조성된 성곽이었고, 이후에 최신 석축술을 도입하여 자신의 이상적인 도시 건설을 위해 계획하고 추진하였다. 교통의 요지였던 수원에 성을 쌓았다는 것이 자급자족도 가능하고 상인들의 유통도 활발하게 할 수 있는 백성을 생각하는 정조의 생각과도 맞물렸던 거 같다.

 

정조 이산의 사망과 개인적인 평가

사망

1794년 피부를 괴사시키는 병이 발병하였고, 이후에 격무와 과로로 인해 1800년 49세에 나이에 세상을 떠남.

평가

어찌 보면 많은 일들을 하기 위한 개혁이라는 이름하에 견제장치는 없었던 것 같다. 탕평정치의 한계로 인한 세도정치의 원인이 되었던 정조는 조선을 멸망으로 이끌고 갈 발판을 마련한 왕이 아닐까 싶다. 순조 때부터 안동 김씨, 풍양 조씨가 권력을 장악하여 보여주는 사태만 봐도 그렇다. 더해서 얘기하자면 정조가 펼쳤던 대부분의 정책들은 정조가 죽고 나서는 전부 중단되거나 폐지되는 등에 너무 뛰어난 왕이 할 일이 많아 개혁에만 앞장선 왕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