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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네] 지식 창고/역사 이야기

조선 18대 왕 현종: 붕당대립과 국력쇠퇴

by 흥부네 수호천사 2023. 11. 6.

현종은 조선 제18대 왕입니다. 즉위 후, 인조 계비인 자의대비의 상복 문제와 관련된 서인과 남인의 대립이 시작되었고, 어머니(인선왕후)의 사망 후 다시 상복 문제로 대립이 심화되었습니다. 붕당대립이 심각하였고, 국력도 많이 쇠퇴하였습니다. 현종은 호남에 대동법을 도입하고, 동활자 주조, 혼천 제작, 지방관 상피법 제정 등의 업적을 남겼습니다. 

 

현종 숭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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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 18대 왕 현종 이연의 배경

  • 1641년 3월 14일 ~ 1674년 9월 17일
  • 조선의 제18대(재위: 1659년~1674년) 왕
  • 능호는 숭릉으로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위치
  • 예송논쟁

 

본관은 전주이며, 이름은 이연이다. 효종의 맏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장유의 딸 인선왕후이다. 비는 김우명의 딸 명성왕후이다. 효종이 봉림대군 시절 청나라 볼모로 있을 때 중국 선양에서 태어났으며, 유일하게 외국에서 태어난 왕이다.

 

※ 조선왕조 더 보기

▣  조선 17대 왕 효종: 북벌정책, 국방력 강화와 통치정책

▣  조선 19대 왕 숙종: 환국정치를 통한 왕권 강화

 

 

현종 이연의 업적과 활동사항

예송논쟁

현종은 즉위하자마자 효종의 죽음으로 1차 예송논쟁이라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인조의 계비인 자의대비의 상복문제로 기년복(가까운 일가와 친척을 위해 1년 동안 거친 삼베옷을 입는 것)을 입어야 하는지 참최복(죽은 부모나 처나 첩이 죽은 남편을 위해서 3년 동안 거친 삼베옷을 입는 것)을 입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였다. 남인은 3년을 주장, 서인은 1년을 주장하며 당쟁이 지속되었다. 효종의 장례에서는 서인의 주장을 따라서 1년 기년복을 채택하였다.

예송논쟁으로 인한 당쟁 싸움의 지속

이후 현종의 어머니인 인성왕후가 사망하였는데, 이때에도 자의대비의 상복문제가 발발하였다. 이번에는 남인은 1년 기년복을 주장하고, 서인은 9개월인 대공복을 주장하였다. 2차 예송논쟁은 현종이 남인의 1년 기년복을 채택하였는데, 자의대비에 상황에서는 아들도 1년, 며느리도 1년이라는 예법이 이상한 상황을 만들었다. 예송논쟁이라는 것 자체가 남인과 서인의 당쟁 싸움이라고 볼 수 있으며, 당쟁 싸움으로 인한 국력도 쇠퇴하는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업적

그렇다고 현종의 업적이 없는건 아니다. 1662년에는 호남에도 대동법(조세를 쌀로 통일하여 납부)을 시행하고, 경기도에 양전(토지조사)도 하였다. 1668년에는 동철활자 10만 자도 주조하였고, 대신 송시열의 건의로 동성통혼도 금지하였다.

 

현종 이연의 개인적인 평가

현종은 아버지인 효종의 정통성 문제로 예송논쟁이라는 부분이 많이 부각되어 있는데, 이러한 당쟁 속에서도 중립적인 입장으로 큰 문제없이 이끌어 나갔다고 봐야 할 수 있다. 개성이 없었던 왕이라고 해야 할까? 꼭 피바람이 불거나 업적이 넘쳐나야만 위대한 왕이 아니고, 평온하게 잘 이끌 수 있었던 것도 큰 업적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