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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네] 지식 창고/역사 이야기

조선 17대 왕 효종: 북벌정책, 국방력 강화와 통치정책

by 흥부네 수호천사 2023. 10. 31.

효종은 조선의 17대 왕으로, 1649년부터 1659년까지 재위하였습니다. 인조의 둘째 아들로 병자호란 이후 형 소현세자가 갑자기 사망하여 즉위하게 되었습니다. 국방력 강화에 많은 힘을 쏟았고, 북벌 계획을 세웠으나 실제로는 두 차례의 나선정벌(청나라 요청에 의한 러시아군 격퇴) 외에는 북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대동법 확대와 상평통보를 주조하고 통화로 유통시키는 등의 업적이 있다.

 

효종 영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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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 17대 왕 효종 이호의 배경

  • 1619년 6월 ~ 1659년 6월
  • 조선의 제17대(재위: 1649년~1659년) 왕
  • 능호는 영릉으로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영릉로에 위치
  • 병자호란, 나선정벌, 북벌정책

 

인조의 2번째 아들로 이름은 이호이며, 어머니는 인열왕후 한 씨, 비는 인선왕후이다. 봉림대군에 봉해지고, 병자호란 이후 세자와 함께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8년 후에 돌아왔다. 형 소현세자가 있었으나 청나라에서 돌아와 돌연 사망하였고, 1649년 인조가 사망하자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 조선왕조 더 보기

▣  조선 16대 왕 인조: 인조반정과 잃어버린 민심

▣  조선 18대 왕 현종: 붕당대립과 국력쇠퇴

 

 

효종 이호의 업적과 활동사항

북벌정책

효종은 청나라에 대한 원한을 품고 북벌 계획을 세웠고, 청나라에 연결고리가 있는 김자점을 파직시켰다. 그리고 그와 뜻이 같은 이들과 함께 북벌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군비를 확충하고 군사력을 키웠으며, 북벌을 위해 군사 훈련을 강화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유배 중이던 김자점과 무리들이 청나라에 북벌정책을 밀고하여 북벌은 더욱더 힘들었으며, 이후에도 북벌정책이라 할만한 건 1954년에 청나라와 러시아와의 충돌로 청에 요청의 의해 진격한 나선정벌(청나라에 요청으로 러시아를 공격)이 전부이며, 사실상 북벌 기회는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북벌 정책은 이후에도 사대부의 반대로 위기에 처하며, 지지받지 못하면서 효종의 정책 동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북벌 정책 추진은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못했으며, 1659년 효종이 사망하자 북벌정책 자체도 사라지게 되었다.

대동법을 확대 실시

효종은 대동법을 충청과 전라까지 확대하였으며, 상평통보(조선시대 화폐)를 주조하고 유통시키는 등의 경제정책도 진행하였다. 

 

효종은 평생을 북벌에 전념하였지만, 재정도 부족하고 현실적인 상황에도 맞지 않았다. 신하들과의 뜻도 하나 되지 못하여 북벌정책의 뜻을 이루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효종 이호의 대한 현대사회의 평가

북벌론을 내세우며 국방력 면에서는 상당한 성과도 보였고, 민생을 수습에도 많은 노력을 하였다. 정통성 문제로 인해 큰 약점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여러 가지로 의욕이 강하여 많은 일들을 펼쳤다. 뜻을 이루지 못한 부분이 많이 아쉽지만 현명하고 어진 왕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