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과 북인의 정치와 횡포에 반발하여 서인들과 함께 반정을 일으켜 이후 왕으로 추대되어 조선 16대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왕위에 오르자마자 '이괄의 난'과 이후 정묘호란과 병자호란등으로 인한 국제정세뿐 아니라 민심도 얻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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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 16대 왕 인조 이종의 배경
- 1595년 12월 7일 ~ 1649년 6월 17일
- 조선의 제16대(재위: 1623~1649) 왕
- 능호는 장릉이며,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갈현리에 위치
- 인조반정, 이괄의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삼전도의 굴욕
선조의 5번째 아들 정원군의 장남으로 본명은 이종이며, 인헌왕후 구 씨가 어머니이다. 비는 인열왕후 한 씨, 계비는 장렬왕후 조 씨이다. 1607년 능양도정에 봉해졌다가 후에 능양군으로 봉해졌다.
※ 조선왕조 더 보기
▣ 조선 17대 왕 효종: 북벌정책, 국방력 강화와 통치정책
인조 이종의 업적과 활동사항
인조반정
광해군이 왕이었을 당시 광해군과 북인들의 폭정과 횡포를 명분으로 삼아 인조의 외척세력 및 서인들과 함께 반정을 진두지휘하였다. 이후 반정세력의 추대와 인목대비의 윤허를 받아 능양군은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이괄의 난
왕위에 오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괄의 난'이 발생하였는데, 반정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도 1등 공신이 되지 못한 점과 아들 이전이 공신들의 역모에 휘말린 점 등으로 난을 일으켰다. 1만의 군사를 이끌고 진격하여 인조는 공주로 피신하였고, 이괄은 서울까지 점령하였다. 그러나 이틀 만에 관군에게 패하며 도망치다가 부하 장수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정묘호란
1616년 여진족이 만주에 건국한 후금은 조선과 큰 마찰이 있지는 않았지만, 인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금나라를 배척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에 1627년 후금이 3만 대군을 일으켜 침략하게 된 조선과의 전쟁이다.
병자호란
1636년 후금은 태종이 국호를 청이라 고치고, 조선을 형제관계에서 군신관계로 바꾸려 하였다. 청나라의 요구를 거부하자, 청나라는 10만 대군을 일으켜 조선을 쳐들어왔다. 남한산성에서 항전하였으나, 1637년 2월 식량부족 및 민간인 학살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항복을 한 사건이다.
업적
군제를 정비하여 총융청 및 수어청(현재의 군부대)을 신설하고, 북방 방위를 위해 여러 곳에 진을 설치하였다. 또한, 피폐해진 농민들을 고려하여 영정법을 시행하고 대동법을 강원도까지 확대 시행하였다.
인조 이종의 평가
인조반정으로 왕위에 올랐지만, 인조의 왕위 등극은 곧바로 나라의 고통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성을 살피지 못하여 민심도 좋지 않았고, 두 번의 호란과 삼전도의 굴욕은 군사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무능한 왕으로 평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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