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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네] 지식 창고/역사 이야기

폐비 윤씨: 연산군 어머니의 비극과 갑자사화

by 흥부네 수호천사 2023. 10. 25.

조선 9대 왕 성종의 후궁으로 들어와 왕비가 되고 연산군이 태어나면서 투기심과 잘못된 행동들로 인해 죽음까지 가야 했던 조선 10대 왕 연산군의 어머니이다. 

 

폐비 윤씨

 

폐비 윤씨 비극의 시작

 

1473년 성종의 후궁으로 간택되어 입궁하였으며, 입궐 후 검소하고 온화한 태도로 인해 성종의 이쁨을 받았다. 1474년에 왕비였던 공혜왕후가 자녀 없이 사망하였고, 1476년에 윤 씨는 왕비에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같은 해 연산군도 출산하였는데, 연산군 출산 이후로 비극이 시작되었다.

 

윤씨는윤 씨는 연산군이 태어난 이후 질투심과 잘못된 행동의 연속이었다. 성종의 후궁들을 음해하고, 독살하려고 하였다. 1479년에는 성종에게 손톱자국을 낸 결정적 사건이 있었는데, 왕에게도 불손하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후궁들과의 갈등 및 성종과의 관계도 틀어져, 결국 윤 씨는 1479년 폐서인 되어 궁에서 쫓겨나게 된다.

 

 

폐비 윤씨 사사사건

 

연산군의 세자책봉 문제가 거론되면서 성종은 후에 폐비 윤 씨의 문제가 꺼림칙하였고, 많은 대신들과 논의를 하였다.

폐비 윤씨는 성종과 대신들의 의견대로 1982년 사약을 받아 사사되었고, 묘지도 없이 매장하였다가 연산군 즉위 이후를 고려하여 묘비를 세우고 '윤씨지묘'라 명하였다. 

 

 

폐비 윤씨 사건으로 인한 연산군의 갑자사화

 

연산군이 왕위에 오른 후 어머니의 폐비 사실을 알게 되면서, 어머니 윤씨를 왕비로 복위시키고 1504년에는 묘호도 격상시켰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1504년 갑자사화가 일어난다. 폐비 윤씨와 관련 있는 자, 복위를 반대하는 자들과 그 가족들까지 처벌하고, 이미 죽은 자들까지 부관참시(죽은 뒤 죄가 드러난 사람에게도 무덤을 파내어 목을 자르거나 하는 등의 극형에 처하는 일) 하였다. 연산군의 이러한 실정으로 인해 중종반정이 일어나고, 폐비 윤씨는 원상 복구되어 '폐비윤씨지묘'로 격하되었다. 

 

※ 조선왕조 더 보기

▣  조선 제10대 왕 연산군: 폭정과 부패

 

갑자사화의 뒷모습

 

갑자사화는 연산군의 어머니 윤씨의 대한 그리움과 원한의 살육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대신들이 이러한 상황을 이용한 궁중세력과 훈구와 사림세력의 보이지 않는 권력 싸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