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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네] 지식 창고/역사 이야기

조선 제11대 왕: 중종반정과 조선시대의 정치 변화

by 흥부네 수호천사 2023.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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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은 조선 제11대 왕으로, 성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중종반정을 통해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습니다. 처음에는 문벌세력을 억누르고 왕도정치를 추구했으나, 나중에는 철인 군주정치에 불만을 품고 훈구파를 용인했습니다. 개혁 정책은 약화되고 정치는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조선 11대 왕 중종 이역의 배경, 그리고 업적과 평가

조선 중종

 

중종 이역의 배경

  • 1488년 4월 25일 ~ 1544년 12월 9일
  • 조선의 제11대(재위: 1506년~1544년) 왕▣
  • 능호는 정릉으로 서울 강남구에 위치
  • 중종반정(10대 왕 연산군을 몰아내고 진성대군 이역을 왕으로 옹립한 사건)
  •   기묘사화 (이상적인 개혁정치를 시도하려다 지배층의 반발이 일어난 사건)

 

본관은 전주이며, 그의 이름은 역이었고, 자는 낙천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정현왕후 윤 씨였고, 비는 좌의정 신수근의 딸이었습니다.

 

제1계비인 장경왕후와 제2계비인 문정왕후를 두었으며, 1494년에 진성대군에 봉해졌습니다.

 

※ 조선왕조 더 보기

▣  조선 제10대 왕 연산군: 폭정과 부패

▣  조선 12대 왕, 인종: 조선 왕조 가장 짧은 재위 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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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 이역의 업적

  • 중종은 연산군 때의 여러 가지 폐정을 개혁하기 위해 홍문관을 강화하였고, 문신들에게 월과, 춘추과시, 사가독서, 그리고 전경 등을 엄중히 시행하여 문벌세력을 억누르고 새로운 왕도정치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 1515년에는 조광조를 등용하여 도학에 근거한 철인군주정치를 추구하였으며, 유교주의적 도덕규범인 향약을 전국적으로 시행했습니다. 또한 현량과를 두어 유능한 신진 사림을 등용하여 이들을 중심으로 한 이상정치를 시도했으나, 이러한 개혁정치는 기존 훈구파(지배층)의 반발을 일으켰습니다.

 

  • 중종은 개혁 정책에 대한 훈구파의 반발도 경험하고 자신뿐만 아니라 조광조의 지나친 도학적 언행을 염증으로 여겨, 이러한 정치적 불안을 겪었습니다. 이로 인해 중종 대에는 기묘사화와 같은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고 각종 옥사 등이 발생하였습니다.

 

  • 외교적으로는 남왜북로에 시달려 왕권호위 강화를 위해 정로위를 설치, 북로 남왜의 왜변과 북방 야인의 침입으로 국방 상황도 복잡해져 왜구에 대비하기 위해 비변사도 설치하였다.

 

  • 경제적으로는 향촌 질서를 유지하고 도덕윤리를 강화하였으며, 인쇄술이 발전하면서 다양한 서적이 편찬되었습니다.

 

이렇게 중종 대에는 정치, 외교, 국방, 경제, 사회 등 다양한 측면에서의 도전과 변화가 있었으며, 이러한 변화는 조선 전기사회에서 후기사회로 이행하는 과도기적인 특징을 나타냈습니다.

 

 

중종 이역에 대한 평가

 

중종의 평을 두고 통일된 의견이 없이 참 다양한 것 같다. 그럼에도 평은 미완의 현군, 중흥의 성군, 혼군, 비정한 임금 등 극단적으로 갈리기도 하는 걸 보면 당시에도 중종은 논란이 많았던 왕이었던 것 같다. 

중요한 건 신권에 지나친 비대화로부터 권력을 지키기 위해 왕권강화에 힘을 많이 쏟은 왕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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