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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네] 지식 창고/역사 이야기

조선 전기 제8대 왕 예종: 짧은 재위와 정치 개혁

by 흥부네 수호천사 2023.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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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은 조선 전기의 제8대 왕으로, 그의 재위 기간은 1468년부터 1469년까지로 짧았습니다. 세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아버지 세조가 사망한 후 19세에 즉위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종은 재위한 지 1년 2개월 만에 생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조선 제8대 왕 예종 이황의 배경 및 활동사항과 평가

예종의 창릉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 경내에 있는 창릉

 

※ 조선왕조 계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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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및 활동사항

  • 1450년 1월 23일 ~ 1470년 1월9일
  • 조선의 제8대(재위: 1468년~1469년) 왕.

조선 전기 제8대 왕 예종(이황)은 1468년부터 1469년까지 재위한 왕으로, 본관은 전주이며 이름은 이황입니다. 그는 세조의 둘째 아들로, 어머니는 파평부원군 윤번의 딸 정희왕후입니다. 예종의 비는 영의정 한명회의 딸인 장순왕후이고, 계비는 우의정 한백륜의 딸인 안순왕후입니다.

 

예종은 처음에는 해양대군에 봉해졌으며, 1457년에 왕세자로 책봉되었습니다. 그리고 1468년 9월 7일에 19세의 나이로 즉위하였지만, 재위 기간은 1년 2개월로 짧게 끝났습니다. 즉위 초에는 세조의 명령을 받들어 한명회와 신숙주 등의 대신을 원상으로 삼아 서무를 의결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1468년에는 직전수조법을 제정하고, 남이와 강순 등이 반역을 시도하여 사형당하였습니다. 1469년 3월에는 왜와의 사무역을 금지하고, 같은 해 6월에는 각 도와 읍에 있는 둔전을 일반 농민이 경작할 수 있게 허락했습니다. 그 해에는 천하도가 완성되고, 7월에는 무정보감이 이룩되었습니다. 그러나 9월에는 『경국대전』을 찬진 하려고 했지만 반포를 보지 못하고 승하하였습니다.

 

예종은 세자 시절부터 정치 경험이 있었으며, 세조의 정치 방법을 받아들여 언관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재위 기간이 짧아 세조 시대에서 성종 시대로의 전환기를 나타내는 과도기적인 시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의 시호는 양도흠문성무의인소효대왕이며, 묘호는 예종, 능호는 창릉입니다.

 

 

예종 이황의 대한 평가

 

예종은 아버지인 세조의 왕위 강화와 강한 왕권 행사에 영향을 받아, 공신들의 위세를 낮추고 왕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한명회와의 대립으로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의심이 따라다녔고, 성종 역시 한명회의 사위로 의심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심을 제외하면 그의 강력한 왕권과 백성을 위한 정책 추진 능력을 인정받는 흔적을 남겼습니다.

 

예종은 대중적으로는 유자광의 모함에 남이를 죽인 야사로 알려져 있으며, 예종이 세조에게 지나치게 찬양한 것과 세조의 묘호를 지나치게 길게 만든 점에 대한 비판도 있습니다. 세조의 묘호는 원래 신종, 예종, 성종 중 하나가 될 예정이었으나 세조로 바뀌었고, 시호 역시 굉장히 길게 바쳐졌습니다. 이로 인해 후대 조선에서 '조'라는 묘호가 남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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