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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네] 지식 창고/역사 이야기

조선 시대 노비 출신의 과학기술자 장영실: 주요 제작품에 업적과 배경, 평가

by 흥부네 수호천사 2024. 4. 23.

장영실은 조선의 기술자로 노비 출신이지만 조선 3대 태종이 재주를 인정하여 발탁하였고, 세종 때 중용하여 많은 제작품과 업적을 남기게 되었다. 우리에게 해시계와 물시계, 측우기 등으로 유명한 과학기술자 장영실에 대해 알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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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과학기술자 장영실의 배경

출생과 사망

1385? or 1390? 년(1393년생이란 기록이 발견되었지만 정확하지 않음.) 정도의 출생을 하였고, 사망 시기도 알 수 없음, 고려 경상도 동래(현재 경상남도)

주요 업적

자격루(물시계), 측우기(강우량 측정 기구), 앙부일구(해시계), 간의(천체 관측 기계) 등

 

아버지는 원나라 유민으로 소주·항주 출신이고, 어머니는 동래현의 기생이었다고 한다. 장영실도 동래현의 관노이나 뛰어난 재주를 인정받아 조선 3대 왕인 태종이 발탁하였고, 세종 때 중용되었다.

 

 

 

장영실의 주요 제작품과 업적

 

  • 1421년 세종은 장영실과 몇몇의 기술자들을 중국으로 보내 천문기기의 모양을 배워오도록 함.
  • 1423년 장영실이 귀국하여 중국의 것을 참고하여 천문기기를 제작하는 공을 인정받아 정5품 행사직을 받음.
  • 1424년 세종이 경점지기를 만들라 하였고, 그로 인해 나온 것이 첫 물시계가 됨.
  • 1432 ~ 1438년 천문기구 프로젝트의 참여 수력에 의해 작동되는 물시계《자격루(보루각루): 1434년》 제작.
  • 1434년 천문관측을 위한 기본기기인 대간의, 소간의를 비롯하여 각종 다양한 기구들을 만들었으며,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해시계(앙부일구: 1434년 이후)가 만들어짐. 또한 구리로 만든 금속활자인 갑인자(1434년) 주조에도 참여함.
  • 1438년 옥루《자동 물시계(흠경각루): 1438년》를 제작하여 세종의 총애를 받음.
  • 1438년 이후 금속제련 전문가로 관료생활을 이어갔다.

 

  • 1441년 세종이 장영실을 시켜서 서운관에 빗물을 측정할 수 있는 그릇을 처음 제작하게 하였다. 측우기는 장영실이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세종과 장영실을 이어 문종에 의해 발명된 사실이 기록으로 더 뒷받침되고 있다.
  • 1442년 세종대왕이 타고 가는 장영실이 만든 가마의 금이 가 있는 걸 세자가 발견하여 불경죄로 형벌을 집행하여 곤장과 파직이 됨. 그 뒤로 장영실에 대한 역사의 자취는 사라졌고, 정확한 출생시기는 알 수 없지만 나이도 꽤 많은 시기였기에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였다.

 

장영실의 대한 평가

장영실이란 인물은 과학자가 아니고 과학기술자이다. 그럼에도 현대에서는 장영실을 과학자로 비추고 있는 것 같다. 당대 유명했던 과학자들과 같이 제작에 참여하였던 역사가 있기에 그런 것 같지만, 그렇더라도 과학자들의 생각을 과학기술자로서 제작에 참여하여 만들어 낸 것에 대한 평가는 높이 평가되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