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사변은 조선을 갖고 싶은 일본이 걸림돌의 원인을 명성황후 민씨라고 지정하고, 1895년 조선의 주재하고 있는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의 지휘하에 일본군이 경복궁에 난입하여 칼로 찔러서 시해하고 불로 태워버린 끔찍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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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 1851년 11월 17일 ~ 1895년 10월 8일
- 이름은 민자영으로 대한제국 2대 황제 순종의 친모, 고종의 비이다.
- 조선 왕비: 1866년 3월 21일 ~ 1895년 1월 12일
- 대한제국 황후: 1895년 1월 12일 ~ 1895년 10월 8일
- 조선 제26대 왕인 고종과 함께 홍릉에 있으며,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위치
명성황후 암살 사건(을미사변)의 배경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에 일본은 무서울 것이 없었고, 일본이 만주까지 넘보는 상황에 놓이자 청일전쟁을 관망하던 러시아가 프랑스와 독일을 끌어들여 삼국간섭으로 일본을 견제하였다.
- 삼국간섭(1895년): 러시아 프랑스 독일이 간섭하여, 일본이 청일 전쟁으로 얻은 요동반도를 청에게 반납하게 한 일
조선은 러시아와 손을 잡고 일본세력을 축출하여 고종의 권력을 복구시키려고 하였다. 러시아에서는 주한러시아공사인 베베르가 조선에서는 명성황후 민씨가 주축을 이루었다. 러시아를 상대로는 아직 힘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일본은 러시아보다는 조선 문제를 처리하여 연결고리를 끊어 버리려고 하였다.
명성황후 암살 사건(을미사변)의 원인
일본은 조선 문제의 원인을 러시아와 결탁하고 있는 명성황후 민씨라고 생각하였고, 결국은 명성황후를 암살하기로 결정하였다. 1895년 10월 8일 새벽 일본군들은 경복궁으로 향하였고, 경복궁을 수비하던 조선군은 일본군의 신식무기에 무너졌다. 일본군들은 황후를 찾기 위해 비무장한 궁녀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난 뒤에 명성황후 민씨를 찾아서 발로 짓밟고 일본도로 내리쳐 시해하였고, 시체를 숲으로 끌고 가 불로 태워버렸다.
이후에 일본은 말도 안되는 이유를 들어 일본 정부는 모르는 일이라며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주한 외교관들에 의해 시인을 하면서 관련자들을 체포하여 감옥에 수감하였지만, 얼마 뒤 증거불충분으로 전부 무죄 석방하였다. 석방된 명성황후 암살 관련자들은 일본에서 영웅처럼 대우받고 환호를 받았다고 한다. XX놈들~!
을미사변의 대한 개인적인 생각
을미사변을 보여주는 2001년 조수미의 「나 가거든」 명성황후 OST M/V로 제작하여 방영하였을 때, 나는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보면서 배우 이미연이 '내가 조선의 국모다'라고 할 때는 눈물이 다 나올 정도였다. 너무나도 비극적이고 가슴 아픈 사건이기도 하고, 일본이라는 나라가 조선을 얼마나 무시하였으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정말 가슴 아픈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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