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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네] 지식 창고/역사 이야기

해상왕 장보고: 해상무역을 주도한 무역거상, 생애와 업적 정리

by 흥부네 수호천사 2024.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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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왕 장보고는 한반도의 신라 말기 역사 속에 살아간 인물 중 하나로, 해상무역을 주도하며 동아시아 국가들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한 무역거상이다. 장보고가 보여준 선구자로서의 역할, 생애와 업적에 대해서 간략히 정리해 본다.

 

장보고

 

해상왕 장보고 출생

 

출생과 사망 연도는 역사서에서도 780년 후반 정도 ~ 846년 정도로 나와 있으며, 통일 신라 시기 평민 출신이었다. 어린 시절에 친구와 함께 당나라로 넘어가 생활하다가 서주지역에서 복무하면서 장교가 되었다고 한다. 

 

청해진 전투

청해진 설치와 해상권 장악

 

장보고는 서주지역에서 장교 생활을 하면서 당나라에 군대 양성법과 전투를 배웠으며, 당시 해적들에 의해 신라인이 잡혀가는 상황도 알게 되면서 828년 귀국하여 왕의 승인을 얻어 군대를 양성하고 완도의 청해진을 건설하면서 장보고의 일대기가 시작되었다.

 

청해진 건설 후 곧 동중국해 해적들을 소탕하여 해상권을 장악하고, 당나라와 신라 그리고 일본을 잇는 국제 무역을 주도하게 되었다. 신라인이 노예로 팔려가는 일들은 없어졌으며, 무역도 다양한 품목으로 거래되기 시작했다. 또한, 일본 관리와 승려 엔닌은 장보고에게 귀국함에 있어 보호를 요청할 정도로 장보고에 위세는 국제적으로 입증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장보고는 평민 출신으로 통일 신라 시대에 골품제와 같은 신분제에 구속되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다 보니, 많은 이들이 장보고를 찾아오게 되었다. 이로 인해 장보고는 많은 군대와 부를 축척하여 거대한 지방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장보고의 사망 비극적 최후

 

장보고의 세력이 커지면서 정치세력에도 관여하게 되었으며, 836년 수도에서 왕위계승에서 패배한 김우징(신무왕)이 장보고에게 의탁하면서 장보고는 김우징을 지원하였다. 838년에는 희강왕이 피살되고 민애왕이 즉위하였는데, 분란을 틈타 경주까지 군대를 보내면서 김우징을 왕으로 옹립하였다.

 

김우징은 아들인 문성왕에 왕비로 장보고에 딸을 생각하였으나, 장보고의 세력을 두려워하는 중앙귀족들에 반발로 무산되었다. 이후 왕실과 장보고의 대립이 심화되면서 장보고의 부하였던 염장을 보내 암살하였고, 염장을 비롯한 병사들에 의해 청해진은 사라지게 되었다.

 

 

장보고의 평가

 

장보고의 마지막은 허망하게 암살로 끝났으나, 8세기 신라인들의 해상활동을 이끌어 낸 장본인이다. 또한, 신라 말기에 등장하는 호족세력의 선구자이기도 하면서, 당대에 한중일 삼국에도 훌륭한 영웅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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